영조가 사도세자를 어떤 의중으로 죽였는가.. 그것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할아버지, 그것을 주도한 새 할머니, 그것을 부추긴 외할아버지, 그것에 동조한 어머니에게 정조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것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듯 하네요.
할아버지 영조와 함께 조선의 마지막 부흥기를 이끌었던 22대 왕 정조.
그의 복수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우선 할아버지 영조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영조는 83세에 죽었는데, 죽기 18년 전...66세에 새 장가를 들게 됩니다.
그것도 무려 15살의 신부와!!! 15살 연하도 아니고 대략 50살 연하;;
그 사람이 바로 노론벽파 가문의 딸인 정순왕후입니다.
대단한 역사공부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잠깐 노론에 대해 알아보자면...
노론의 시파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였고, 노론의 벽파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옹호했습니다.
즉, 노론벽파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부추긴 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드라마 이산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온갖 방해로 정조가 왕이되지 못하게 하려했으나 실패합니다.
그런 노론벽파 가문의 딸이 어린나이에 다 늙은 할배에게 시집을 왜 갔을까요?
그녀는 권력욕이 컸고 정조보다 고작 7살 많았으나 정조의 할머니였습니다.
정조는 즉위하면서 이제 뭐 좀 해보려고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모든 대신들 앞에서 천명하였지만,
노론벽파는 실질적인 왕을 정순왕후라 여겼습니다.
정조도 처음부터 크게 반항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세력이 약하니까요.
그리하여 홍국영을 앞에 내세워 자신의 세력을 조금씩 키우면서
겉으로는 자신의 할머니 정순왕후를 따르는 척 했습니다.
힘들게 즉위한 정조는 즉위 후에도 자리 보존이 위태로웠습니다.
영화 역린에도 나왔듯, 정조 즉위 1년 1777년 7월 28일
정조의 서고이자 침소인 경희궁 존현각에 정체모를 자객이 침입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바로 정유역변입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조용히 자신의 힘을 기르던 정조는 어느정도 힘이 생겼을 때
"이제 슬슬 처리해볼까" 하며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노론이지만 세손시절 정조를 보호했던
혜경궁홍씨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외조부인 홍경한을
도성 밖으로 내치고 작호를 빼았았습니다.
손자는 지켰지만 사위인 사도세자의 죽음은 외면했었죠.
뿐만 아니라 작은 외할아버지 홍경한의 동생 홍인한은 죽여버렸습니다.
또한 사도세자의 죽음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는
작호를 빼앗아 궐내로 내치고, 그의 오라비인 문성국은 관노로 삼았습니다.
정조의 본인의 친어머니에게도 나름대로의 벌을 주었습니다.
정조의 친모인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의 저자로도 유명합니다.
그녀는 한중록을 쓸 당시 60세였으며 71세까지 썼고 이미 영조, 정조를 거쳐 순조가 왕이 되는 것 까지 지켜보며 온갖 풍파를 겪은 상태였습니다.
혜경궁 홍씨의 입장에서 볼 때, 남편 사도세자는 정적이었습니다.
그녀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동참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정조)의 보위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그 중 하나가 아비를 살려달라고 영조에게 간청하는 세손 정조를 데리고 궁 밖으로 나가 버린 것입니다.
영조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마저 없애버린 것이죠.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어떠한 처벌도 할 수 없었던 그는 간접적인 방법이나마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벌할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정조는 즉위 다음해인 1777년에 창경궁 가장 높은 언덕에 어머니를 위해 자경전을 짓습니다.
이것이 왜 어머니를 벌하는 것이냐 하면 바로 자경전 건너편에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혜경궁 홍씨도 겉으로 티내지 않았겠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중록에서 그토록 사도세자의 죽음은 자기 집안과는 상관없고 정신병 때문이라고 강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 무언의 모자싸움은 순조가 혜경궁 홍씨가 죽자 사도세자의 무덤에 합장을 해버리면서 정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굳이 다른 곳에 묘를 쓸 수 있었지만 정조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정순왕후의 오빠인 김귀주는
정조의 친모 혜경궁 홍씨에게 문안을 드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흑산도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실제로 정조는 정순왕후를 처리하고 싶었겠지만 명목상 할머니인 그녀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그냥 내버려둔 것은 정조에게 있어서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바로..!!